1단원 번영, 불평등, 그리고 전 지구적 한계들
1.2 역사의 하키스틱
이븐 바투타가 살았던 시대 이래, 세계 모든 곳에서 생활수준이 극적으로 좋아졌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같은 정도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다이앤 코일(Diane Coyle)이 GDP 측정의 혜택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자. <경제학 2.0: 거시경제학>에서 GDP를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배울 것이다. 시점과 국가들 사이에서 평균생활수준을 비교하기 위해서 경제학자들은 재화와 서비스의 물가가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기 위해 구매력평가지수(purchasing power parity, PPP)를 사용한다. PPP는 일종의 물가지수인데, 주어진 재화와 서비스 묶음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을 특정 연도에 기준 국가(예를 들어 2011년 미국)에서 동일한 묶음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과 비교하여 측정한다.
- 국내총생산(GDP)
- 일정기간에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합산하는 측정치이다. 국내총생산은 기업과 비영리기관, 정부기관에서 생산된 최종 산출물로 중복계산을 하지 않고 단일치를 합산하여 계산한다. 가계의 산출물인 경우 거래된 것만을 포함한다. 국내총생산은 월별, 분기별 그리고 매년 측정된다.
그림 1.1은 이야기의 단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개별 국가의 생활수준을 비교하기 위해서 국내총생산(GDP)이라고 부르는 측정치로부터 시작해 보자. 국내총생산은 한 국가 내에서 일 년 동안 재화와 서비스가 얼마나 생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측정치이다. 국내총생산은 한 국가의 “총산출”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학자 다이앤 코일(Diane Coyle)은 국내총생산을 “못으로부터 칫솔까지, 트랙터, 신발, 머리손질, 경영컨설팅, 거리청소, 요가강습, 접시, 반창고, 책과 그 외 한 국가 내의 수많은 서비스와 생산품을 포함한다”고 말한다.1 이들 산출물 모두를 각각의 시장가치를 이용하여 합산하면 총생산의 측정치가 되는데, 이는 그 국가내의 모든 사람들의 소득을 합한 것과도 같다. 국내총생산을 한 국가의 전체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국내총생산을 구할 수 있는데 이는 평균소득 혹은 “생활수준”을 나타낸다. (이상의 국내총생산에 대한 설명에서는 몇몇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는데, 이 장의 <심화학습>에서 빠진 부분을 추가로 설명할 것이다.)
그림 1.1에서 각 선의 높이는 가로축에 표시된 연도의 평균생활수준에 대한 추정치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데이터로 판단할 때 14세기에 이탈리아의 생활수준은 당시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의 하키스틱
그림 1.1 역사의 하키스틱: 6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1000-2018)
Stephen Broadberry. 2021. ‘Accounting for the great divergence: recent findings from historical national accounting’.; Total Economy Database.; S. N. Broadberry, B. Campbell, A. Klein, M. Overton, and B. van Leeuwen, B. 2015. British Economic Growth, 1270–1870.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S. Broadberry, H. Guan, and D. Li. 2018. ‘China, Europe and the Great Divergence: A Study in Historical National Accounting’ Journal of Economic History 78: pp. 955–1000.; J. P. Bassino, S. Broadberry, K. Fukao, B. Gupta, and M. Takashima, M. 2019. ‘Japan and the Great Divergence, 730–1874’ Explorations in Economic History 72: pp. 1–22.; S. Broadberry, J. Custodis, and B. Gupta, B. 2015. ‘India and the Great Divergence: An Anglo-Indian Comparison of GDP per Capita, 1600–1871’ Explorations in Economic History 55: pp. 58–75.; P. Malanima. 2011. ‘The Long Decline of a Leading Economy: GDP in Central and Northern Italy, 1300–1913’. European Review of Economic History 15: pp. 169–219.; S. Broadberry and L. Gardner. 2022. ‘Economic Growth in Sub-Saharan Africa, 1885–2008: Evidence From Eight Countries’. Explorations in Economic History 83: 101424.
주: 여기에 나와있는 역사적 데이터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그림 1.1은 6개국의 가장 최신 데이터로 작성되었다.. 그 외 국가에 대한 자료도 인터렉티브 차트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그림에 나타난 형태가 아이스하키스틱을 닮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형태의 그래프를 가리켜 “하키스틱 곡선”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측정치로 보면 2018년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인도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6배 더 잘살았다. 14세기에도 그랬지만,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영국에 사는 사람들만큼 잘살았다.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이들보다 더 잘살았고 노르웨이에 사는 사람들은 훨씬 더 잘살았다.
1300년 이전에는 데이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의 GDP는 1000년, 1090년, 1120년 3개의 추정치만 있다. 그래프에는 이 세 점을 직선으로 이어 추세를 나타냈다.
그림 1.1은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연구에서 가져온 것이다. 앵거스 매디슨은 1000년 이상 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유의미한 비교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경제사학자들이 추계한 보다 최근의 자료가 그림에 나타나있다. 이 책은 세계의 각 지역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와 같은 데이터가 모든 경제학의 시작점임을 보여줄 것이다.
역사의 하키스틱이 모든 국가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타나더라도 각 국가마다 다른 모습을 띤다. 영국에서는 성장이 1650년경에 시작되었는데 1870년경에 성장이 시작된 일본에 비해 하키스틱 모습이 덜 급하게 꺾이는 모습을 보인다. 서유럽에서 경제성장이 시작된 시기에 중국과 인도에서는 오히려 생활수준이 악화되었고 하키스틱의 꺾인 부분은 훨씬 더 지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나타났다.
중국과 인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유럽 국가들의 식민통치나 간섭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국민의 생활수준의 현격한 향상이 일어났다.
- 인도: 인도는 점차 영국의 식민통치하에 놓이게 되면서 1600년과 1870년 사이에 1인당 국내총생산이 1/3가량 하락했다.
- 중국: 중국은 유럽국가들이 중국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했던 18-19 세기 동안 인도와 같은 생활수준의 하락을 경험했다. 중국이 영국보다 부유했던 적도 있었지만 20세기 중반에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영국의 ¼ 수준이었다.
- 라틴아메리카: 19세기 초반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스페인 식민통치하에서도 혹은 해방 이후에도 그림 1.1의 국가들이 경험했던 하키스틱 모양의 생활수준의 향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의 경우 1960년 식민통치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의 변화가 거의 없었던 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독립 이후에도 성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림 1.1은 또한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 생활수준의 향상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나라마다 달라서 전 세계 나라들 사이에서 생활수준의 큰 차이를 초래했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인도나 중국과 같은 “후발국가”가 더 부유한 국가들을 따라잡기도 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하키스틱과 같은 모습의 경제성장은 일어나지 않았다.
통계학자인 한스 로스링(Hans Rosling)이 만든 흥미로운 영상 자료는 어떻게 일부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주 일찍부터 부유한 (또한 건강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 이래 경제학자들은 지난 3세기 동안 왜 어떤 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성장했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경제적 성장을 경험하지 못했는지를 이해하고자 오래도록 고민해왔다. 애덤 스미스는 그의 가장 중요한 책의 제목을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라 칭했는데 이 제목을 직역하면 국가의 부의 성격과 원인에 대한 하나의 연구이다.2 아래 <위대한 경제학자>편에서 애덤 스미스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위대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스코틀랜드에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당시 글래스고우는 계몽주의 사상과 식민지 무역의 중심지였는데, 이 두 가지가 애덤 스미스의 경제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유럽전역을 여행하였는데, 프랑스의 툴루즈를 여행할 때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렇게 쓰여진 책이 바로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다.
1776년에 출판된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사회는 어떻게 서로 잘 알지 못하고 세상에 넓게 흩어져 있는 수많은 경제행위자들(생산자, 운송업자, 판매자, 소비자 등)의 독립적인 활동을 조정할 수 있을까? 그의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이들 경제행위자들 사이의 조정이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유지하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지배자들이 피지배 계층에게 명령을 내리는 식으로 이루어지던 기존의 정치 혹은 경제적 조직 개념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가 전한 이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이러한 조정이 개개인이 이기심을 쫓은 결과로서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매일 저녁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려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국부론>의 다른 부분에서 스미스는 경제학 역사상 가장 오래도록 회자되어 온 은유적 표현 하나를 소개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다. “사업가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것을 도모하게 되는데 이것이 사회를 위해서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본인이 의도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위할 때 보다 종종 더욱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도모하게 된다”고 스미스는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오직 거지만이 동료 시민의 자비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도 했다.
번영의 주요 원천이 노동의 분업 혹은 특화이며 이는 “시장의 범위”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아이디어도 스미스의 통찰력 있는 주장 중 하나이다. 스미스는 유명한 핀 공장 이야기를 통해 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10명의 개인이 총 18개로 구분되는 공정 중 한 두 가지 작업에 완전 특화하게 되면 하루에 5만개에 가까운 핀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개인들이 따로 독립적으로 핀을 만들었다면… 하루에 20개도 어쩌면 하나의 핀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산된 엄청난 양의 핀은 생산이 구매자들을 만나려면 생산이 이루어진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팔려야 한다. 따라서 배가 지날 수 있는 운하 건설이나 국제무역의 확장은 특화를 촉진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번영은 “시장의 범위”를 확장시키게 되는데, 이렇게 경제적 확장의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스미스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이기심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부론>이 출간되기 17년 전에 그는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3
그는 특히 판매자들이 서로 간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하나로 뭉치는 경우 시장시스템이 실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오락과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도 서로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만나게 되더라도 그들의 대화는 가격을 올리거나 대중의 이익에 거스르는 계책을 함께 도모하는 것으로 끝난다”라고 적고 있다.
스미스는 영국 동인도 회사와 같이 정부에 의해 보호되는 독점에 대해서 특히 비판적이었다. 당시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와 영국과의 무역을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인도 식민통치의 대부분을 관장하고 있었다.
스미스는 정부는 외부의 적들로 부터 국가를 보호해야하며 경찰과 사법제도를 통해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또한 스미스는 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와 다리, 도로, 운하와 같은 공공사업에 대한 정부의 투자를 주장하기도 했다.
확인문제 1.1 다음 중 옳은 것을 모두 골라라
다음은 애덤 스미스에 관한 설명이다. 옳은 것을 모두 골라라.
- 스미스는 정부는 외부의 적들로 부터 국가를 보호해야하며 경찰과 사법제도를 통해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 스미스는 특히 판매자들이 서로 간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하나로 뭉치는 경우 시장시스템이 실패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 스미스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이기심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부론이 출간되기 17년 전에 그는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책을 출판하였다.
- 이 진술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매일 저녁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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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ne Coyle. 2014. GDP: A Brief but Affectionate Histor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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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Smith. (1776) 2003.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New York, NY: Random House Publishing Gro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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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Smith. 1759.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London: Printed for A. Millar, and A. Kincaid and J. B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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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ifer Robison. 2011. ‘Happiness Is Love – and $75,000’. Gallup Business Journal. Updated 17 November 2011. ↩